비닐우산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윤석중 작사 이계석 작곡 동요 우산이란 노래입니다.

3, 4십년 전에만 해도 비오는 날엔 거리에는 비닐우산으로 가득 찼지요. 대나무로 만든 살대 위에 비닐을 씌워 만든 일회용 우산인데 우리 가정에서는 두고두고 썼습니다.

비포장 도로 군데군데 고인 물웅덩이를 피해가며 비닐우산을 받쳐 들고 뛰어가면 등에 맨 책보 속에서는 필통에 담아 놓은 연필들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 앞에 가면 비닐우산으로 가득하지만 개중에는 비를 맞고 오는 동무들도 참 많았습니다. 5원짜리 비닐우산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 때 그 시절이 비 오는 이아침에 남다른 그리움으로 젖게 합니다.

지금도 비닐우산이 있지마는 옛날 비닐우산과는 완전히 다른 고급 우산으로, 돈 없는 사람은 쓸 수 없는 값비싼 우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옛날 비닐우산은 한 번 뒤집어지면 비닐은 멀쩡해도 우산살이 부러져서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 우산을 그냥 버린 집은 아마도 없었을 겁니다. 어떻게 고치든 어른들이 다시 고쳐서 쓰고 다녔습니다.

그 때 그 시절에는 우산으로는 비닐우산이 유일했고 잘사는 집은 천으로 만든 우산, 양산이 있었으나 보통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었지요. 시골에 살았던 저는 우산이 없어서 비오는 날 도리(짚으로 만든 우의)를 걸치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비에 젖은 도리는 얼마나 무거운지 초등학생이 들기에는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보기도 흉하고 간수하기도 불편하였으며 특히 다른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더 싫어서 그냥 비를 맞으며 다니는 것이 편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는 모두가 빗물에 흠뻑 젖은 생쥐 꼴이 되지요. 그래도 우리는 잎이 넓은 호박잎이나 토란잎을 꺾어서 머리위에 받쳐 들고 서로를 바라보며 함박지게 웃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살았던 가은은 탄광촌이라 날씨가 좋고 바람이 불면 까만 먼지가 날리고, 비오는 날에는 흐르는 빗물이 온통 깜장색이었습니다.

탄광촌에서는 흰 색깔의 옷은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빨래를 해서 널어놓으면 까만 먼지가 앉아서 빨래를 하나마나였으니 그 때 어머니들의 고생은 참 많았습니다.

집 안팎이 온통 검정색 투성이니까 아무리 쓸고 닦고 해도 탄 먼지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흔해빠진 것이 비닐인데 그 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쓰다 버린 비닐우산을 비닐만 뜯어내어 살림살이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뜯어낸 비닐을 가지고 주머니를 만들어서 습기에 약한 물건들을 간수하던 희미한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내남없이 가난했던 시절이라 무엇이든 아끼고 절약하든 습성들이 몸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 때는 의례히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지사로 여겼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 때 그 시절처럼 산다면 부자 안 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풍족함이 넘쳐서 짐승들도 입이 고급이 되어 돈이 들지 않은 사료는 먹지도 않습니다.

거리에 나가보면 품에 안고 다니는 애완견들은 인간이상의 대접을 받고 삽니다. 좋은 옷에다가 햇빛에 눈이 부신다고 선글라스까지 끼워가지고 다니는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시골 할아버지가 서울 아들네 집에 갔더니 개만도 못한 대접에 격분하여 개집에 들어갔었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가 참 서글프게 들립니다.

옛날 개나 돼지들은 꾸중 물에 딩겨나 조금타서 주면 그만이었지요. 거기다 개들은 똥을 먹는 똥개라 하여 어린아이가 방에서 실례를 하면 개를 직접 방에까지 불러들여서 아이의 배설물을 깨끗하게 치우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아이들 귀저기가 지금처럼 방수가 되지 않은 천으로 되어있어서 이때도 흔 비닐 쪼가리를 이용하여 귀저기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1960년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그 시대를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