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고구마

 
초등학교 6학년 2학기(1958년) 가정실습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는 내남없이 가난하던 시절이라 하루세끼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점심은 건너뛸 때도 있었고 잘 하면 감자나 고구마 두어 개로 끼니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래도 살기가 조금 괜찮은 집은 고구마나 감자를 박아 놓은 조밥에다가 옥수수 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아버지와 논에서 피사리를 하고 오후에 치른 고구마를 캤습니다.
배고픈 참에 아버지 몰래 새끼 고구마를 옷소매에 대충 문질러서 먹다가 들켰습니다.
많이 혼날 것이란 생각에 겁이 덜컥 났습니다.
 

“배고프냐?”  대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고구마 하나씩 깎아먹고 일하자.”
아버지께서는 고구마 넝쿨을 자르시던 낫으로 고구마를 깎아서 주셨던 생각에 새삼스레 목이매입니다. 그 시절 고구마는 온 식솔들의 양식이요, 구황(救荒)식품이었습니다.
옛날에는 흔해빠진 먹을거리들이 차츰 자취를 감추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서양 음식들이 우리들 식탁을 점령하였는데, 요즈음 들어서 그 옛날의 음식들이 웰빙이란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것도 푸대접 받던 救荒食品이 아니라 웰빙이란 귀한 영양식품으로 화려하게 컴백하였습니다.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그 시절에는 고구마뿐만 아니라, 돼지감자, 칡뿌리, 송구껍질, 모매싹, 감꽃, 찔레순, 이슬아치, 깨곰, 어름, 개살구, 오디 등 산야에서 나던 열매들까지 모두가 음식이요 간식거리로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었습니다.
친구가 빨고 있는 오화당을 한 입 얻어먹으려고 따라다녔고, 친구 입에서 내 입으로, 내 입에서 또 다른 친구 입으로 사탕하나가 여러 개의 입을 돌고 돌았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기적의 음식 라면이 등장하면서 빈부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 하였습니다.
제일 부러웠던 게 라면을 박스 띠기로 사다가 먹는 집이었습니다.
어쩌다 라면이 한 봉 생기면 온 식구가 먹기 위하여 국수를 섞어서 끓여 놓으면 진짜 라면 맛은 아니더라도 참 행복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엥겔계수는 가계지출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합니다.
그 옛날에는 대단히 큰 비중을 치지하는 지표였지만, 지금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50년대) 엥겔계수는 약 51. 6%였다고 하던 것이 지금은 13. 1%로 엄청나게 줄었지만 아이니컬하게도 우리가 원하던 먹을거리는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전에는 먹을거리가 없어서 아버지께서 깎아주시던 고구마를 배가고파서 구황식품으로 먹었지만, 지금은 친환경 웰빙 식품으로 먹고 있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고구마에서 시작하여 돌고 돌아 다시 고구마로 돌아온 것입니다.
요새는 미국 산 쇠고기 때문에 먹을거리의 눈높이가 엄청나게 높아져서 아마도 주부들의 장보기가 더욱 까다롭고 힘들게 되었습니다.
“알면 병이요, 모르면 약이다.”란 말이 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촛불의 깨우침의 불똥이 가정의 식탁으로 튀어서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는 되었으나 높아진 입맛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너도 나도 친환경 식품을 찾을 것인데 그에 따른 문제는 역시 돈이겠지요.
친환경만 좋아하다 보면 다시 엥겔계수가 오르지는 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내산 친환경 식품은 외국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것이 사실인데,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나라의 걱정도 깊어질 것 같습니다.
아버님이 계셨더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애비야 고구마 농사를 좀더 짓자.” 라고 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고구마 밥을 좀 해 달라고 졸라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